들개(野良犬, Stray Dog)(1949)-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아래 이미지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권리가 있으며 아래 글은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제작 : 영화예술협회, 신토호(新東寶)

출연 :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 시무라 다카시(志村喬), 아와지 게이코(淡路惠子), 미요시 에이코(三好), 센고쿠 노리코(千石規子), 기무라 이사오(木村), 치아키 미노루(千秋實)

 

구로자와 아키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흔히 사무라이 영화, 대작 서사 등등과 그의 많은 대표작 들의 이름이 떠오르실 겁니다.

근래엔 할리우드 감독 들이 그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딴 작품들이나 아예 리메이크 했었다 등등의 얘기가 왕왕 있었구요.

그의 영화도 서부극의 형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그리고 실제로 도스토 예프스키라던가 셰익스피어 등 문학을 영상화 한 것들도 많죠.) 그의 말년 제작 후원을 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이 자신들의 영화에 모티브였다고 말하며 팬인 것을 밝히기도 했었죠.(일본 자국 보다 오히려 서구권에서 도 호평을 받은 탓도 있겠지요.)

그는 많은 감독들이 오마쥬라던가 리메이크의 욕망을 느끼는 존경과 질시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의 라쇼몽은 여러 가지로 변용이 되고 아직도 무대화 되고 있죠.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1977) C3PO R2D2의 경우 숨은 요새의 세 악인(三惡人)’(1958)(2008년 히구치 신지에 의해 리메이크)을 모티브로 해서 레이어 공주와 연계해 만들어진 캐릭터이고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이나 월터 힐의 라스트맨 스탠딩은 그의 작품 요짐보를 리메이크 한 것이며 ‘7인의 사무라이의 경우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The Magnificient Seven)’(1960), 서극의 칠검’, 안톤 후쿠아의 태양의 눈물등으로 수많은 변용(애니메이션 , 에스 에프, 각 나라 실정에 맞는 변용까지)과 함께 리메이크 됐었죠.(‘7인의 사무라이역시 다시 리메이크 될 예정이고요. 각각의 영화들은 사골 우리듯 아주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이 영화 들개도 자국에서만 두 번 리메이크 되었고 각국에 영향을 끼친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에 소재나 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영화중 최근작으로 루 추안(陸川)사라진 총(尋槍, The Missing Gun)’(2002)을 들 수 있겠습니다.(훌륭한 감독겸 배우인 강문의 혼돈을 표현하는 연기가 좋아서 같은 소재이면서도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사라진 총(尋槍, The Missing Gun)(2002)-루 추안(陸川)>

 

무엇보다 이 영화 들개에서의 일반적인 관람 포인트는 아직 풋내 나는 집념의 젊은 형사 무라카미 역을 맡은 미후네 도시로의 고독과 불안을 표현한 것이고 그 주변의 인물인 사토 역의 시마무라 타카시와의 전형적인 노형사와 젊은 형사의 콤비 등과 각 군상 들의 전형적이지만(전형적이라고 할 수 만은 없는 것이 이 영화의 시기가 1949년이라는데…) 세세한 주변묘사 들일 겁니다.

더위에 땀을 흘리는 사람들, 객석에 꽉 찬 사람들이 댄서의 몸을 훑으며 담배를 피고 빙과를 먹고, 야구장에서 소동을 벌인다던가, 또 취조 중에 빙과를 먹는 장면 그리고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걸친다던가, 아내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데 투덜대며 혼자 일만 하는 남자의 모습이랄지 하는 것이 단순하고 단조로운 화면에 디테일을 부여해주고 있지요.

 

<용의자를 쫓기 위해 야구장을 뒤지고 있다. 이 후 전개되는 용의자 체포의 장면들은 이 후의 영화에도 영향을 끼친 장면들>

<무희들의 몸짓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수박을 먹으며 손님을 기다리는 여인>

<취조중에 빙과를 나눠먹고 담배도 나눠 핀다^^>

<경찰들이 온 것에 탐탁지 않아 하면서 계속 일만 하는 사내>

 

이 영화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그 단순한 내용을 단순하고 효과적으로 풀어냈기에 오늘 날에도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이 영화는 은유나 대치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날 것의 느낌이 들 정도의 거칠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내용전달을 하고 있죠.

처음의 사격장 장면과 총을 잃을 때 까지 직접적이고 무덤덤하게 묘사합니다.(이 영화에 리얼리즘적 요소를 전후 사회에서도 찾지만 이런 장면적인 툭 던져놓은 듯한날 것의 표현이 좀 더 직접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후 총에 대해 모든 관심이 가 있는 상황에 가서는 미후네 도시로 만을 뒤쫓듯 진행이 시작되지요.

 

<시작과 동시에 들개 헐떡이는 장면에 타이틀이 뜹니다. 무지하게 직접적이죠^^>

<들개 타이틀 이 후 시작과 동시에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사격장으로 연결된다.>

<무더운 날의 버스 꽉 차 있는 가운데엔 소매치기도 있고 여러 군상 들이 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추적이 시작된다.>

<소매치기 여인을 향한 스토커식 막가파 추적과>

<범인인 유우사를 쫓는 마지막 까지 지독하게 고생하며 쫓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면서 주가 되는 장면들로는 반복적으로 사라진 총을 찾아 다니면서 벌어지는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추적과 추격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토커와 같은 대놓고 추격부터 황량한 전후의 일본 시가를 헤메이는 장면들이 있는데 뻔하지만 확실한 구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황량한 시가와 볼품 없는 공간을 그저 대놓고 쫓을 뿐인데도 비어있다는 느낌보다 긴박감이나 집요함이 느껴지는 것은 탄탄한 구성과 함께 관객을 배역에 몰아가게 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답답한 실내 공연을 마치고 땀에 절은 채 힘들어 하는 어린 무희들>

 

또 이 영화에 특징적으로 계속되는 묘사로는 더위에 대한 여러 표현이 있는데요.

더위나 비 자체가 스릴러에 잘 어울리는 기후적 특성이며 그 자체가 내용의 깊이를 부가시켜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계속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옷에 맺히고 흐르는 비와 진창에 질척이고

이런 류 에서는 시원함 보다는 좀 더 답답하면서 끈적끈적하고 처절한 느낌을 부여해주기도 하지요.

이런 요소들은 제이 리 톰슨의 케이프 피어(Cape Fear)‘(1962)라던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파이크 리의 썸머 오브 (Summer of Sam)’(1999)같은 스릴러 부류나 많은 공포영화 들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방법들이지요.

 

 <더위속에 고생하며 세상을 훑는 무라카미의 눈이 간단한 몽타쥬에 디졸브 되어 효과적인 표현을 이루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무라카미의 정처 없는 추적의 장면이겠죠.

 

<사실 이런 자세의 대치는 이 영화에서처럼 이 정도의 거리가 있는 총을 쥔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과장이랄 수 있다. 하지만 활극과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활극의 대가답게 살진(殺陳) 구성과 같이 선택한 것이리라.>

 

그리고 최후에 범인을 잡기 위한 긴장과 추적, 격투 들도

이 영화를 보통 평하면 당시 일본사회의 단면을 다큐멘터리 적으로 풀어놓았다 뭐 이런 얘기들이 주류입니다.

전 후의 비참함, 부족함, 황량함 뭐 이런 것 들을 리얼하게 다뤘다 이렇게 논하는 거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평을 한다?

게다가 1949년이 배경인 영화에?

당시 궁핍하다고 해 봐야 극중에서도 보여지는 궁핍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범인 유우사 근처의 빈곤층이나 범죄가 벌어지는 변두리 유곽뿐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황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려 일부 도시와 북적거리는 빈민촌이 아니라면 그 시기 세계 각 곳은 거의 이런 모습이었을 테죠.

 

<꽉 찬 야구장. 전 후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겠지만 배곯이엔 장사 없으니 어려움 속의 여유랄까?>

<전 후의 빈곤처럼 다뤄놨지만 시대상을 본다면…>

 

퇴근해서 맥주로 집에 들어와 수박이나 간단한 안주를 먹고 아이들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낙인, ‘여유는 없지만 소박한 삶이라고 형사들의 삶을 다뤄놨지요.

그 당시는 말 할 것 없이 지금의 우리 직장인 들은 그 보다 뭐가 더 낫겠습니까?

현대에도 극빈층은 존재하고요.

오히려 불쌍한 척 못한 척 하면서 야구장에 관객 꽉 차서 있고 이런 저런 유흥을 즐기고 생계가아닌 허영과 욕심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이 영화에 대한 다른 이야기 들은 모르겠고 뭐든 얘기가 다 일리는 있는 것이겠지만 이 것을 전후 빈곤의 코드로 보는 부분은 썩 동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전쟁에 져서 식민지들 수탈하던 때 보다 원한 만큼의 호의호식을 못할 뿐인 거죠.

당시 우리나라가 어땠는데 그 걸 그렇게 보다니

영화 자체의 묘사는 사실적이나 그 사실적 표현을 빈곤 혹은 궁핍으로 포인트로 잡는 시각은 옳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영화얘기 중심의 포인트가 엇나가는 것 같으니 각설하고 얘기하자면 이 이야기의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무라카미와 유우사는 제대 직후 궁핍하고 각박한 세태에 휩쓸리지요.

제대와 동시에 둘 다 군생활로 모은 돈을 털리고

무라카미는 그런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 바른 생활 주의의 뻣뻣한 형사가 되고 유우사는 상실감에 방황하다 한탕을 노리는 그런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보는 시각들은 뭐 같은 시작 다른 길이라는 인생의 선택에 관한 문제인데요.

제 생각엔 분명 시작 또한 같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인간 각자의 본 개념이 틀릴 것이고 가정적 여건도 틀렸을 것입니다.

단순하고 근시안 적으로 똑 같은 조건인데 한 사람이 잘못 되었다 하면 그런 놈들이 원래 그래로 보는 편협된 시각이 아닐런지요?

일례로 총을 가진 후의 행동들에서 상황과 배경 또한 무시할 수 없고 기본적인 인간성의 차이 또한 있기야 있겠죠.

 

<유우사는 강도를 위해 한 가정을 깨 놓습니다. 이 것은 공공의 적’(2002)에서의 대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죄가 무슨 죄가 있어 죄 짓는 사람이 잘못이지와 같이 유우사 개인의 잘못이지 못 사는 놈은 다 그래의 선입관 과는 상관없고 영화를 다루는 편한 도구 였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 것을 일반적으로 보는 그런 그릇된 시각들이 얼마나 사람의 격차와 차별을 더 부르고 선입관에 의해 못 가진 사람을 점점 무시하게 되는 그런 생각, 그런 풍토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총기류 습득시 신고를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겁이 나 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범죄에 사용하기 위해 사제 총까지 만드는 사람이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유우사는 심지가 얕은 사람이겠죠.

게다가 못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몰아갈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보는 시각은 늘 존재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생계형 범죄나 치정관련, 단순 강도가 아닌 큰 범죄들은 못 가진 놈이 아닌 가진 놈 들의 행동일 때가 많지요.

우린 때론 ‘많이 가지고 있다’라는 이유로 그들을 존경까지 하고 그들 스스로 죄를 망각하고 존엄속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세태 아닙니까?

<선택에 의해 같은 시작 다른 결말을 맞이 한 두 청년을 나란히 뉘어 놨지만 과연 그 것이 같은 시작일까?>

 

그래서 일반적으로 멋들어지게 영화자체를 평해본다면 마지막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웠을 때 같은 시작의 청년 들이 어떻게 달라졌는가의 의미를 붙여보겠지만 썩 그렇게 보고만 싶진 않군요.

멋 없고 삐딱해 보여도 그냥 이 영화자체의 미덕인 스트레이트로 우직하게 가는 것이 좋을 뿐. 그런 식의 비뚤어진 기득권 적인 시각은 버리고 싶거든요.

뭐든지 인간의 탓을 하는 종교관의 원죄주의의 영향 같기도 하고요.

하긴 사회가 이따위로 돌아가는 것도 인간 개개인의 잘못이 뭉친 것이기에 그 따위 매도를 하는 것이겠지만^^

 

-아 이 영화는 DVD나온지도 꽤 됐고 구해 보시기 쉬울 겁니다.

단순한 플롯에 깊이 생각 안 하면서도 그렇다고 내용 빈 영화도 아니고 좋은 미덕 또한 많이 지니고 있는 영화입니다.

필견하시길……

 

Posted by thek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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